핀란드 태생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96년생이다. 지휘자 평균 나이보다 한참 어린 20대의 나이에도 감안하고 그가 현재 쌓고 있는 커리어는 어마무시하다. 2020년에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이 된 것부터 시작해서 1년 뒤인 2021년에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다. 두 오케스트라 모두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20대의 신예 지휘자가 이 두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클래식 팬들에게 더욱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2027년부터 그가 로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맡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라모폰 선정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명문 오케스트라가 메켈레에게 음악 감독을 제의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그가 현재 클래식 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지휘가 도대체 어떻길래 이런 말도 안되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메켈레의 지휘를 한국에서 접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원래는 2021년에 오슬로 필과 함께, 그리고 2022년에는 파리 오케스트라오함께 방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어 아쉬움을 삼킨 바 있다. 그러다가 올해 10월, 드디어 그가 오슬로 필과 함께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티켓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유독 올해 유명한 오케스트라들이 많이 내한하게 되어 공연 지출이 너무 커졌다. 그러다보니 오슬로 필 내한공연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저렴한 좌석은 일찌감치 매진되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볼 마음을 접었었다. 하지만 우연히 신세계가 주관하는 전석 초대 공연인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에서 오슬로 필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운 좋게도 초대권 티켓을 구하게 되어 가게 되었다. 심지어 1장도 아닌 티켓 2장을 구했는데 때마침 클라우스 메켈레를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메켈레의 팬이 된 클알못(?) 친구가 공연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해 같이 보게 되었다ㅎㅎ
공연장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고 티켓은 티켓교환권을 티켓 카운터에 제시하면 1층 혹은 2층 중 자리를 추첨하여 자동 배정되는 시스템이다. 과연 어느 자리로 배정될까 궁금했는데 추첨 결과 내 자리가 1층 중앙에 가까운 자리인 것을 알게 된 후 기분이 마구 좋아졌다. 아무래도 1층 중앙 자리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잘 보일 뿐만 아니라 소리도 가장 좋다보니 보통 가장 티켓 가격이 가장 비싼 자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1층 중앙 자리는 나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자리였는데 이날 공연에서 운 좋게 그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에 입장했다.
1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재닌 얀센)
프로그램은 북유럽 오케스트라답게 자신들의 장기인 작곡가 시벨리우스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첫 곡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이 협연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여러 버전으로 들어봤는데 아무래도 최근에 봤던 리사 바티아쉬빌리가 서울시향과 협연했던 때와 비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바티아쉬빌리의 연주도 상당히 훌륭했지만 재닌 얀센의 연주는 미쳤다 밖에 나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연주였다.
1악장부터 호소력 짙은 연주를 보여주며 곡의 긴장감을 높였으며 3악장에서는 46세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힘 있는 연주를 선보이며 최고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감상했다. 힘과 기교는 물론이고 연주에서 온갖 감정이 다 느껴지게 만드는 연주를 보며 얀센이 왜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명인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참고로 5년전 이맘때쯤 얀센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동일한 곡으로 협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소리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자리 때문일까?)
2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두 번째 곡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었다. 교향곡 2번은 7개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중 가장 긴 작품이며 국제적으로 통용할 만한 형식을 갖추되 핀란드 전통 요소를 교묘하게 삽입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시벨리우스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교향곡인데 이날 메켈레가 오슬로 필을 이끌고 지휘한 2번은 처음 보는 사람조차 지루하지 않게 만든 임팩트 있는 연주였다.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지휘자 특유의 지나치게 달리거나 과장된 음악을 만들지 않고 템포를 적절히 조절하며 묵직하고 진중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한 마디로 표면적인 나이는 어리지만 해석은 노장급의 해석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지휘 하나하나가 디테일하면서 파워풀해 시각적으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이어지면서 나오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메켈레의 우아한 지휘 손동작에 맞춰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춤추듯이 열렬히 연주하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당연히 이 때 나온 음악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고 4악장 내내 지휘자를 비롯해 모든 단원들이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선보이며 곡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했다. 4악장 후반부에 서서히 음악이 고조되고 빵! 하고 마무리되는 그 순간의 여운은 아직도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곡 전체적으로 봤을 때 현악기의 밸런스가 기가 막혔고 팀파니와 금관의 순간의 존재감을 극대화함으로서 북유럽의 광활한 바다의 높은 파도가 연상되는 무시무시한 사운드를 보여주었다.
이날 공연을 보고 메켈레의 지휘와 그의 곡 해석에서 그가 왜 현재 오슬로 필, 그리고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인지를 알 수 있었고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현재 최고로 잘 나가는 젊은 지휘자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같이 보러간 메켈레 얼굴 팬 친구 역시 얼굴도 얼굴인데 지휘도 잘하고 곡 해석도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ㅎㅎ 친구까지 만족시킨 흔치 않은 최고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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