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어떤 수준의 오케스트라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평가받는 것일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에 상주하는 오케스트라이며, 1842년에 창단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명 'Viennese Sound(비엔나적 사운드)'라고 불리는 빈 필하모닉만의 독특한 소리를 유지하며 저명한 연주자와 지휘자들에게 다른 오케스트라와 차별화된 뛰어난 연주력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오랜 역사와 이와 함께 유지해오는 빈필만의 사운드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있어서 빈필과의 연주는 꿈의 무대이다.
이런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한국에 매년 꾸준히 방문한다는건 클래식 팬들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2019년에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함께 내한한 이후부터 2021년에는 리카르도 무티, 2022년에는 프란츠 벨저-뫼스트 (2020년에는 발레리 게르기에프와 함께 내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취소) 이렇게 매년 한국에 오고 있다. 그리고 올해 2023년에는 러시아 태생의 지휘자 투간 소키에프(Tugan Sokhiev)가 빈필 내한공연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이전에 내한공연을 맡았던 지휘자들과 비교했을 때는 생소한 이름의 지휘자다 보니 지휘자를 본다는 기대보다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본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다. 하지만 소키에프가 지휘를 굉장히 잘한다는 소문을 여기저기서 접하다 보니 소키에프라는 지휘자가 빈필과 어떤 연주를 보여줄지 상당히 궁금했다.
이번 내한공연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틀 간 진행되며 첫째날에는 피아니스트 랑랑이 협연해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을 선보이고 둘째날에는 협연 없이 베토벤 교향곡 4번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그 중에 내가 선택한 공연은 첫째날이었는데 그 이유는 소키에프가 러시아 태생(정확히 말하면 조지아 국경 북쪽에 위치한 오세티아 태생)의 지휘자이므로 러시아 레퍼토리에 강할 것 같았고 개인적으로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을 좋아하기 때문에 첫째날에 공연을 보기로 한 것이다.
1부: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협연: 랑랑)
솔직히 말해 이날 공연에서 랑랑은 내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평소에도 피아니스트 랑랑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이 공연을 보러 간 목적 자체가 빈필이다보니 나에게 랑랑은 그저 빈필 내한공연의 장식품(?)일 뿐이었다. 그래서 랑랑을 본다는 기대감보다는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는다는 기대감, 그리고 빈필 연주를 영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훨씬 더 컸다.
연주에 대한 후기를 쓰기 전에 다른 분들이 올린 여러 후기를 보니 랑랑의 연주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 것 같다. 하지만 피아노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기존에 들었던 음반의 연주와는 전혀 색다른 연주란 느낌이 들어 재미있게 들었지만 화려한 동작과 지나친 쇼맨십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랑랑의 연주와는 별개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반주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안정적이었다. 협주곡이라 소편성인데도 불구하고 빈필은 역시였다! 애초에 빈필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지 랑랑을 보러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주자보다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더 집중해서 들었고 그 때문에 그런지 협주곡인데도 불구하고 빈필의 연주가 돋보였다.
2부: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
빈필 공연을 보러간 이유 중 하나가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을 실연으로 접해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50분 가까이되는 장대한 곡을 무려 빈필이 연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렜고 소키에프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프로코피에프 교향곡을 빈필과 어떻게 소화할지도 상당히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연주였다. 듣는 내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했다. 빈필의 연주는 두말할 필요 없이 완벽했고 소키에프의 지휘도 환상적이었다. 소키에프의 지휘에서 템포를 기가 막히게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오페라가 장기라 그런지 소키에프의 프로코피에프 5번은 한편의 오페라를 보듯이 드라마틱했다. 거기에 빈필 현악기의 현란하고 유려한 사운드와 관악기, 타악기의 어마무시한 폭발적인 사운드가 결합되니 진짜 말도 안되는 사기적인 연주였다. 특히 금관은 진짜… 범접 불가한 수준이었다. 호른, 트럼펫, 트럼본 모두 볼륨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면서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의 어려운 템포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을 보고 연신 감탄했다.

음악 자체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1악장의 주선율이 긴장감을 유지한채로 천천히 흐르다가 후반부에 서서히 고조되며 굉음과도 같은 공포적인 사운드가 울려퍼지는데 이 부분에서 정말로 압도되었다. 여기서 모든 악기가 소키에프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2악장에서 치고 빠지는 듯한 유연한 리듬감도 듣는 내내 재밌었고 3악장의 비극적이면서 우아한 사운드 또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악장은 4악장이었다. 다이내믹 조절이 기가 막혀 악장 내내 긴장감이 있었고 템포가 일정하게 빠른 4악장을 소키에프가 기가 막히게 오케스트라를 조련하며 환상적인 피날레를 장식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서곡 & 천둥과 번개 폴카 (앙코르곡)
앵콜은 빈필 답게 오스트리아 왈츠곡들로 구성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서곡이랑 천둥과 번개 폴카 두 곡을 선보였는데 휘황찬란하게 연주를 너무 잘했다. 소키에프 지휘자는 지휘하기보다는 거의 춤을 추는 듯이 지휘해 곡을 완전히 즐기고 있는 듯했다. 소키에프가 지휘하는 슈트라우스 왈츠를 들으며 조만간 소키에프가 빈필 신년음악회를 지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필의 연주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로 잘한다. 근데 러시아 음악이 장기인 투간 소키에프 지휘 아래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 연주는 내가 들었던 빈필 연주들에서도 손에 꼽을 최고의 연주 중 하나가 아닐까 확신한다! 끝나서도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명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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