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에는 야경만 보았다면 둘째 날에는 본격적으로 함부르크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았다. 여유롭게 밖에 나와 걷다가 에어비엔비 호스트분께서 추천해주신 독일 정통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레스토랑 이름은 Paulaner's Restaurant이었고 말 그대로 파울라너 맥주를 판매하는 독일 바바리안 음식 레스토랑이다. 함부르크 같은 북부에 위치한 도시에 남부 뮌헨 지방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독일 맥주와 함께 독일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내가 주문한 맥주는 Paulaner 밀맥주(Weissbier)였고 음식은 독일식 족발이라고 할 수 있는 슈바인학센(Schweinshaxe)을 시켰다.
파울라너 밀맥주 맛은 깔끔했고 아주 맛있었다. 거기에 기름진 슈바인학센이 더하니 아주 훌륭한 식사였다. 하지만 맥주 없이 슈바인학센만 먹었다면 아주 느끼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독일 맥주와 슈바인학센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ㅎㅎ
점심을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함부르크 시내를 구경했는데 먼저 간 곳은 함부르크 중앙역 부근이었다. 중앙 역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큰 호수가 보이는데 호수 전경은 아름다웠다. 거기에 날씨까지 좋으니 아름다움은 배가 되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호수 이름은 알스터 호수라고 하며 함부르크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아름다운 알스터 호수를 따라 쭉 걷다 보니 계획한 목적지에 다다랐다. 바로 함부르크 미술관(Kunsthalle Hamburg). 서양화를 감상하는 것을 좋아해 도시를 방문하면 미술관에는 꼭 가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함부르크 여행 또한 미술관에 갔다. 함부르크 미술관은 다른 유명한 미술관에 비해서는 유명한 그림이 많지 않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평소에 몰랐던 그림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미술품을 감상했다.
함부르크 미술관에서 기억나는 그림 중 하나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디리히(Caspar David Friedrich)라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의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였다. 산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올라가 기품 있는 자세로 안개가 깃든 풍경을 바라보는 그림인데 작품 속 인물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미술관은 쭉 둘러보고 밖에 나오니 어느새 노을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함부르크의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특히 강가 주변으로 펼쳐지는 노을 풍경은 잊히지가 않는다. 보통 혼자 여행을 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는데 유독 함부르크 노을 풍경을 감상하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 갑자기 문득 전날 야경만 봤던 엘베 필하모니 풍경에 대한 아쉬움이 생각나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엘베 필하모니를 봐야겠다고 생각해 서둘러 엘베 필하모니로 향했다. 도착할 무렵 다행히 해가 아직 지지 않았고 노을 진 엘베 필하모니를 가만히 감상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사실 둘째 날 또한 엘베필하모니에서 공연을 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노을을 감상한 다음 저녁을 가볍게 먹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본 공연에서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지휘는 스위스 태생 지휘자 필립 조르당(Philippe Jordan)이 맡았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이고 조르당 또한 세계적인 지휘자이긴 하지만 이날 공연을 보고 싶었던 핵심 이유는 바로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1부는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 2부는 바그너 <신들의 황혼> 발췌곡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는데 2부 <신들의 황혼>이 가장 기대가 되었다. 평소에 바그너의 오페라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바그너 오페라 중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가 <신들의 황혼>이고 그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의 음악들만 발췌해서 연주했기 때문이다.
1부 프로그램이었던 슈만 교향곡 3번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연주가 지나치게 가벼워 음악에 대한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교향곡 자체는 정말 아름다운 음악인데 지휘자의 해석에서 약간 아쉽다고 느껴지는 교향곡이었다. 거기에 여행의 피로가 겹쳐서 그런지 음악이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실망스러운 1부였지만 2부 <신들의 황혼>에서는 1부와 너무 대비되게 엄청난 연주를 보여주었다. <신들의 황혼> 전체가 아닌 일부 발췌해서 연주한 형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1부와는 반대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는 조르당의 뛰어난 해석과 더불어 연주를 아주 잘했는데 특히 금관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지크프리트 장송곡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금관 소리를 듣고 전율이 돋았다. 장송곡 이후 지크프리트의 아내인 브륀힐데의 독백 장면이 바로 나왔는데 이날 브륀힐데 역을 맡았던 Camilla Nylund는 목소리가 매력적이었고 브륀힐데의 감정을 노래만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현재 슈트라우스와 바그너에서는 최고의 소프라노 중 한 명인데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여김 없이 증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날레 음악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신들이 몰락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는 마무리에서의 바그너 음악은 정말 계속 들어도 황홀하다. 수많은 오페라들 중 음악적으로, 또한 스토리적으로 완벽한 마무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비록 극 전체로 이 음악을 감상하진 않았으나 발췌곡으로 감상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고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연주와 Camilla Nylund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기분 좋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괜히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훌륭한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을 끝으로 이틀 간의 함부르크 여행을 마무리지었다. 비록 볼 것이 많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시내 곳곳을 자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원인이 되었고 거기에 두 개의 공연을 봄으로서 클래식 음악 마니아인 나로서는 잊지 못할 이틀을 보냈다. 다음에도 갈 기회가 있다면 함부르크에 무조건 다시 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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